남 궁 두(南 宮 斗) 때는 조선조 중엽, 지금의 전라북도 옥구군(沃溝郡)의 임피(臨陂)에 남궁두라는 부호가 살고 있었다.나이 서른에(1555년 명종10) 진사가 되어 서울에 살고 다만 애첩 하나를 시골집에 두어 농장을 경영하게 했다.그런데 그 애첩이 남궁두의 당질과 눈이 맞아 간통하였다.그 사실을 알게 된 남궁두가 여러번 타일렀으나, 잘못을 고치지 않자 화가 난 그는 화살로 두 사람을 쏘아 죽이고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머리를 깍고 중이 되었다.어느 날 남궁두가 경상도 의령의 작은 암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데 한 젊은 중이 힐끗 쳐다보면서 『당신은 양반인데 어째서 뒤늦게 삭발을 하였습니까?』하였다.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니 『무척 참을성이 있을 분이군요』하고 웃으면서『두 사람의 목숨을 해쳐, 죄를 짓고 도..